한 연극 덕후가 있다. 그는 성덕이기까지 해서 직업도 비평가다. 최근 너무 맘에 드는 연극 작가가 데뷔를 했다. 이렇게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처음이다. 근데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그에게는 당근보다 채찍을 주기로 한다. 남들은 칭찬일색인데 나 혼자 호되게 비판하기로 한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 작가가 나의 존재를 알고 내가 훈련하는 대로 글을 써나가는거 같다. 하지만 난 단 한번도 칭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글을 쓰지 않는다. 10년 만에 (맞나?) 복귀한다고 해서 목욕을 하고, 가장 비싼 옷을 입고 심지어 걸어서 극장에 갔는데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 작가가 공연이 끝난 당일 밤 나에게 찾아왔다!
나도 고급지게 표현하며 쓰고 싶은데 능력 밖에 일이라 포기했다.
뭔가 데뷔 때부터 봐온 본진이 오랫동안 일을 안하고 있어서 덩달아 나도 휴덕 중이었는데 기대했던 본진 복귀작이 내 맘에 너무 안들 때의 기분을 이렇게나 고급지고 쉽지 않게 표현한걸까?
뭔가 1차원적인데 고급진 신기한 극이다. 그리고 재밌어. 인형의 집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각색이 되게 잘 됐고 이런 글빨 능력이라니 정말 부럽다.
유교수 빼고 진짜 극에서 표현하는 '한남'새끼들이라 진짜 속으로 쌍욕을 몇번을 했나 모르겠다. 자리가 1열이기도 해서 진짜 뛰쳐나가서 여러번 멱살 잡고 싶었다. 주위 곳곳에서 어이가 없는 헛웃음이 괜히 나오지 않았을 것.
지금 시국에 여러가지 사안들, 특히 젠더갈등으로 인해서 오는 모든 사건들과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특히 '아들'들이 가족에 미치는 영향을 정말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극 중에서 말하는 '상류층' 집이라 고급진 세트도 예쁜데 천장을 스크린을 사용해서 보여주는 연출 되게 신선했다. 그래도 난 많이 트여있는 채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개 곳곳에 허를 찌르는 대사들과 마지막까지도 결말도 뭐야 이 뒷통수는? 질투야? 했다가 결국 그 어떤 프레임에 갇혀있는 나 자신을 보고 다시 반성했다고 한다.
석옵 찌질한 연기 참 잘하시네요. 배우들 연기가 좋아서 주연이 용진 한대 칠 때 진짜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깡이 너만 자존심 있는거 아니야!!! 할 때도......
첫 씬에서 엄청 불편해 보이는 말 그대로 코르셋의 드레스를 입고 종종 거리면서 등장했던 깡이 마지막에 편한 운동화에 바지 입고 퇴장하는게 상징하는 바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유교수님? 유전병은 대대로 물려지지 않을 수 있답니다? 착상 전 유전진단이라는 기술이 있거든요.... 이상 전공자 올림